<< Extreme Surprise >>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5월27일 방송
ㆍ삿포로서 40년 만에 뜨거운 포옹
이산상봉 역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을 연출한 남북 오누이를 꼽는다면 한필성·필화 두 사람일 것이다.
남녘의 오빠 한필성과 북녘의 여동생 한필화는 1950년 이별한 후 딱 한 번 만났다.
그날이 90년 3월8일이다. 이들이 재회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 까닭에 남매의 만남은 더욱 세인의 심금을 울렸다.
한필화는 64년 인스부르크 동계올림픽에 출전, 스피드스케이팅 3000m에서 은메달을 거머쥐었다. 스피드스케이팅 종목에서 아시아 여자선수 최초의 메달이었다.
북한의 빙상 영웅이 된 한필화는 71년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프레 동계올림픽에도 선수로 참가했다.
오빠 한필성의 고향친구가 북한 선수단 사진 속에서 한필화를 발견했다. 사진을 본 한필성은 혈육임을 단번에 알았다. 일본 아사히신문이 두 사람의 국제통화를 주선했다. “오빠, 오빠 나야.” “필화야.” 남매는 옛 추억과 가족 안부 등을 주고받으며 눈물을 쏟았다.
신문에 보도된 애끊는 30분간의 통화내용과 수화기를 들고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은 온 국민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남북한 당국은 남매의 상봉을 주선하고 나섰다. 한필성은 부푼 기대를 안고 도쿄로 날아갔다. 하지만 분단의 벽은 높디 높았다. 상봉장소를 놓고 남북이 정치적 이해만 따지며 밀고 당기다 상봉은 무산됐다.
서로를 발치에 두고 만나지 못한 남매는 눈물을 흘리며 각자 귀국길에 올라야 했다.
19년이 흘렀다. 한필화는 제2회 동계아시아경기대회가 개최되는 삿포로를 다시 찾았다. 이번엔 북한빙상협회 임원으로서였다.
남북 당국은 다시 한씨 남매의 상봉 성사를 위해 노력했다. 16살, 8살 때 헤어진 남매는 삿포로 지토세공항에서 40년 만에 뜨겁게 포옹했다. 71년 ‘전화 상봉’ 때만큼 격정적이지는 않았지만 남매는 연신 눈물을 훔쳤다.
“아버지 돌아가실 때 오빠만 찾았건만.” “북녘 어머니가 보고 싶구나.” 두 남매는 공항 레스토랑에서 1시간가량 오붓한 만남을 가졌다. 여동생은 오빠에게 건강하라는 의미가 담겼다며 호랑이 석분화(石粉畵)를 선물로 건넸다. 오빠는 홀로 월남한 후 자신의 40년 인생사를 담은 육성 테이프를 어머니에게 전해달라며 누이에게 내밀었다. 남매의 사연은 방송 등을 통해 소개되면서 분단의 아픔을 상징하는 사례로 사람들의 뇌리에 남았다.
Ⅲ. 기적
1971년 서울, 긴장된 표정으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남자. 곧이어 한 여자가 전화
를 받는데…
이것은 남과 북에 떨어져 사는 남매의 전화 통화로, 분단 이후 최초의
일이었다! 한 오누이의 기적과도 같은 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