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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스페셜 어머니와 사진사 미국인 사진작가 킴 뉴턴 배은심 여사 한울삶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사건 최루가스 이한열애도사진 영정사진 총학생회장 우상호사회부장 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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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스페셜 777회방송프로그램소개 2018년 6월 11일 월요일 6월항쟁 특집  어머니와 사진사 재방송 다시보기 편성표

방송시간은 시사/교양 MBC (월) 오후 11시 10분 입니다.

 ■ 기획의도  


1987년 6월, 독재 권력의 억압에 맞서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던 그날 그 거리. 

그 거리에는 직격 최루탄을 머리에 맞아 결국 눈을 감은 학생과 대한민국 민주주의

의 역사를 취재하던 푸른 눈의 외국인 저널리스트가 있었다. 

그로부터 31년이 지난 오늘. 거리의 외국인 저널리스트는 미국의 한 대학 교수가 되

었고 보통의 어머니는 아들이 세상을 떠난 후 거리의 투사가 되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바라본 87년의 6월은 어땠을까?

 6월항쟁 특집, ‘어머니와 사진사’에서는 이들이 기억하는 그날의 6월

과, 이들이 살아온 31년의 이야기를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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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요내용  


 ◇ 미국인 사진작가 킴 뉴턴(Kim Newton) 이야기  


1985년 당시 미국인 사진작가 킴 뉴턴(Kim Newton)은 <르 피가로>, <타임>, <뉴

스위크> 등의 유명잡지사를 위해 일하는 도쿄 주재 특파원이었다. 그는 1988년 서

울 올림픽으로 한국이 세계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1986년 봄, 한국 관광홍보 사진을 

찍기 위해 제주도를 찾았다. 외국인들이 갈만한 제주도의 관광지 사진이나 한국의 

경제 발전상황을 외국에 알리기 위해 산업단지와 공단을 찍던 그는, 1987년이 되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사건으로 한국의 정치상황이 극한의 상황으로 치닫자 취재를 

위해 서울로 올라오게 된다. 처음 시위 사진을 찍으러 간 날, 그는 방독면이 없어 눈

에 최루가스를 가득 묻힌 채 사진을 찍었다. 혹독한 신고식을 치른 그는 다음날 바

로 이태원 암시장에서 방독면을 사 왔다. 그리고 여느 기자들과 다름없이 방독면을 

쓰고 서울의 시위 현장을 취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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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그는 매일매일 빠짐없이 서울의 시위 현장을 찾았다. 노태우가 대선 후보로 선

출된 민정당 전당대회에도, 6·10 국민대회가 열린 그 거리에도 그는 현장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취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최루탄을 맞은 22살의 젊은 학생이 결

국 세상을 떠나버린 날에도 킴 뉴턴은 연세대학교 앞에서 이한열을 애도하는 학생들

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한열을 살려내라”  


연세대학교 앞은 전경들과 학생들로 가득했고 학생들의 외침에는 슬픔과 분노가 뒤

섞여 있었다. 외침이 멈추고 친구 이한열을 애도하는 묵념과 함께 바람이 불기 시작

했다. 바람에 한 학생이 든 태극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킴 뉴턴은 바람이 태극기

를 펼쳐 주기를 기다렸고 완벽한 순간을 사진에 담았다. 바람이 만들어준 이 사진은 

유명 시사주간지 U.S. News and World Report에 ‘이주의 사진 (Photo of this 

week)’으로 선정되어 당시 한국의 정치상황을 전 세계에 알렸다. 훗날 사진 속 영정

을 든 총학생회장 우상호는 국회의원이, 태극기를 든 사회부장 우현은 유명한 배우

가 되었다. 



그리고 2017년, 그가 30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을 때 30년 만의 서울은 최루탄 대

신 촛불로 물들어져 있었다. 



“저는 1987년 학생들의 민주화운동이

한국에 민주주의를 가져다주는 것을 내 눈으로 목격했습니다. 

그들의 희생 덕분에

지금 시위대가 여기 나와서 시위를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된 거죠. 

촛불시위든 태극기 집회든 어느 쪽이든 상관없이 

사람들이 자기 뜻을 알리기 위해 시위를 할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입니다. 

지금이 1987년이었으면 이곳은 최루가스로 자욱했을 거예요”

- 킴 뉴턴, 2017년 3월 시청광장에서  



2007년 모교의 교수가 된 킴 뉴턴이 다시 한국으로 오게 된 것은 ‘6월항쟁 30주년’을 

맞은 작년이었다.  제작진은 1987년 6월항쟁부터 2017년 촛불집회까

지, 이방인인 그의 눈으로 본 한국 민주화운동 30년의 역사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하

기 위해 촬영을 시작했다. 하지만 MBC 경영진에서 ‘6월항쟁 30주년’ 다큐멘터리 제

작을 중단시켰고 결국 그의 이야기는 2017년에 방송되지 못했다. 그리고 한 해가 지

나, 마침내 그의 이야기가 공개된다. 


mbc스페설


 ◇ 갑작스럽게 자식을 잃고 삶이 180도 변한 어머니, 배은심 이야기  


배은심 여사는 아무 걱정 없던 어머니였다. 아들과 딸들이 공부 잘하고 또 건강하게 

잘 크고 있었고 아버지 역시 가족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생긴 비극

적인 사건으로 평화롭던 인생이 송두리째 변해버렸다. 

아들 한열이는 최루탄을 맞아 쓰러져 27일 만에 눈을 감았다. 아들을 묻고 다섯 해

가 지난해에는 남편마저 화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나는 거기서부터 태어난 것 같아요 저는.

그때 내 나이 마흔아홉이었는데 마흔아홉 먹은 나이는 없어진 거고... 

나는 거기서부터 태어난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 왔어요”

- 배은심 인터뷰 중  



지금 배은심 여사는 광주와 전국민족민주 유가족협의회 (‘유가협’) 회원들이 살고 있

는 ‘한울삶’을 오가며 살고 있다. 배은심 여사는 ‘한울삶’이 없었으면 벌써 죽었을 거

라고 말한다. 이 집에 사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식을 잃은 것, 자식이 땅속에 들어

간 것이다. 그래서 ‘한울삶’의 한쪽 벽에는 열사들의 사진으로 가득하다. 이 사진 속 

아이들은 누군가의 자식이 아니라, ‘한울삶’ 가족들 모두의 자식이다. 



“이한열을 망월동에 묻어 놓고 제2의 장소가 이 집이 돼버렸어요. 

저는 이 집이 없었으면 죽었을 거예요”  



◇ 쓰러진 친구를 지키던 평범한 학생 우석훈 이야기  


1987년 6월 9일 연세대학교 앞. 그날은 유독 최루탄이 많이 터지던 날이었다고 한

다. 당시 경제학과 2학년 학생이던 우석훈은 평소와 다른 최루탄 소리에 놀라 학교 

안 분수대까지 달려가 몸을 피했다. 분수대 옆 잔디에 누워 숨을 고르던 도중 누군가

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게 길었던 한 달의 시작이었다. 그날부터 우석훈과 

친구들은 전경으로부터 쓰러진 한열을 지키기 위해 세브란스 병실 앞을 떠나지 않았

다. 



“대학교 2학년 땐데, 10미터쯤 됐을 거예요.

앞에 있던 친구가 죽었죠 거기서. 그때는 그게 오래갈 기억일지 사실은 몰랐어요.

서른이 넘고 마흔이 됐는데도 문득문득 한열이가 쓰러졌던 그때 ‘누군가 쓰러졌다’

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던 그 자리로 가있는 기분이 들고는 해요. 그 사건은 이제 제

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됐고 제 삶의 한 부분인 것 같아요”

- 우석훈 인터뷰 중